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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사건, 그날의 이야기

 "그날도 매우 평범한 날이었어.

그때의 탐정사무소는 차 유리 파손 사건을 해결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그 후 벌어진 휴지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약간의 자괴감도 가지고 있었지."

 해진이 과거를 회상하듯 말했다.

나는 해진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아직 탐정사무소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탐정사무소의 역사에 대해 들어보는 것은 분명 나에게 도움이 될 터였다.

 "우리가 세 번째로 맡은 사건은 한 소녀의 의뢰로 시작됐어. 그 소녀는 우리에게 자신의 밤을 훔쳐간 범인을 찾아 달라고 말했지.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바로 수사에 들어갔어."

 상당히 흥미로웠다.

 고작 스물몇 명 밖에 다니지 않는 학교에서 도둑이라니.

해진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우선 그 소녀의 이야기를 들어 봤지.

소녀가 말하기를,

그날은 밤을 여섯 개나 주웠고, 하나는 엄청나게 커다란 왕밤이었기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고 하더군.

사건이 일어난 것은 점심시간이 다 지난 다음이었어.

수업을 끝마치고 감뿌아후 (수업이 끝나고 하루 동안 있었던 감사, 뿌듯, 아쉬움, 후회가 됐던 일들을 적는 것. 이 학교에 알림장 같은 개념으로 존재한다)를 쓰던 소녀는 자신의 사물함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어.

소녀가 땄던 밤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심지어 왕밤은 사라져 있었거든.

소녀는 자신의 밤을 잃어버린 채 어떡할지 고민하다가,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우리에게 의뢰한 거야."

 해진은 숨이 차는지 잠시 숨을 골랐다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소녀도 가만히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야.

그 소녀도 기본적인 추리에 대한 감각이 있었거든.

소녀는 다른 학생들의 가방과 사물함과 쓰레기통까지 다 확인하고, 학생들을 직접 신문하기도 했어.

하지만 범인은 나오지 않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에게 의뢰를 했지.

우리는 우선 주변 인물들을 탐문하기 시작했어.

물론 '내가 범인일세'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

본격적인 수사는 나와 권율 탐정, 두 명이 했어.

그때는 탐정사무소 멤버가 고작 4명이기도 했고, 당시 새 부원이었던 권율의 잠재력을 테스트하기 위함이기도 했지.

탐문 결과 그날 가장 마지막으로 사건 현장에 들어갔던 사람은 박 씨 성을 가진 남자아이로 밝혀졌지만,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어. 왠지 모르게 수사를 하면 할수록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었지."

 흥미진진했다.

이런 작은 학교에서 그런 재밌는 일이 있었다니, 왜 나는 자세히 알지 못했을까 싶기도 했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다시 해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사건이 점점 방향을 잃어 갈 때쯤 우리는 탐문에서 또 다른 정보를 얻었어.

소녀와 같은 반이던 한 소년이 점심시간이 끝날 시간에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책을 꺼내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지.

그리고 그 소년의 사물함은 소녀의 사물함 바로 옆자리였고.

어때, 뭔가 짚이는 점이 있지 않나?"

 나는 잘 모르겠다는 눈으로 해진을 응시했다.

 "너 정도면 이쯤에서 눈치 챌 거라 생각했는데. 소년은 점심시간이 곧 끝날 것이란 사실을 알았어. 그러기에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급하게 책을 꺼냈지. 그런데 책을 꺼낼 때 사물함 앞에 있는 책상을 피해 책을 꺼내려면 책을 옆으로 세워서 꺼내야 해. 소녀의 밤이 소녀의 사물함 앞쪽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소년이 소녀의 사물함 쪽으로 책을 꺼냈다면..."

 "밤이 책에 밀려 떨어졌겠지."

 "바로 그거야! 소년이 책을 꺼내는 사이, 소년의 책에 밀려 밤은 떨어졌고, 친구와 대화를 하느라 소년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거라면...

이제야 사건에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지 않나?"

 "하지만 그렇다면 사라진 왕밤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내가 반박했다.

하지만 해진은 문제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것도 내가 설명을 해주지. 그때는 밤이 한창 익어 떨어질 때였고, 아이들은 서로 밤을 많이 주우려 경쟁했어. 그 사실은 너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하네. 그때 같은 반 여자아이는 스무 개도 넘는 밤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사물함 앞에 밤이 떨어져 있다면, 누구라 해도 자신의 밤이라고 생각할 것이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어. 예를 들면 또래의 아이들이 소녀를 놀리려고 벌인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럼 떨어진 밤을 설명할 수가 없어. 물론 그 소녀의 또래 아이들은 모두 알리바이가 충분했고, 만약 정말 의도적으로 범행을 꾸민 거라면 밤을 떨어트려놓을 리가 없겠지."

 드디어 사건의 전말을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사건의 범인은, 탐정사무소가 찾지 못한 게 아니라, 애초에 없었던 거였다.

 "우리는 소녀에게 이 사실을 자세히 설명했네.

소녀는 설명을 듣고 고마움을 표하며 수사 종결을 요청했고, 우리는 조금은 뿌듯하게 수사를 마무리지을 수 있었지."

 이것이 밤 사건의 결말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밤 도난 의심 사건'이라고 해야 할까. 어찌 됐든 간에, 밤 사건은 무사히 종결되었고, 지금의 탐정사무소를 있게 해 준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나는 소장 해진의 추리력에 대한 감탄과, 내가 이런 탐정사무소의 일원이 되었다는 뿌듯함으로 그 날을 끝마쳤다.